김정은의 각종 현지 지도에 동행하며 존재감을 과시해 온 김주애가 한 달 이상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김일성 주석 생일행사 때도 김주애는 나타나지 않았는데요.
일각에선 김주애를 활용한 선전 효과가 떨어져 의도적으로 노출을 줄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김주애의 행보를 북한에서부터 지켜봐 온 탈북민들은 김주애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주민 피로감이 크다고 증언했는데요.
특히 젊은 세대들은 불만도 종종 표출한다고 합니다.
오늘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김주애를 바라보는 북한 주민의 시선과 북한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살펴봤습니다.
지난 3월 15일, 김정은 위원장이 강동종합온실 준공식장을 찾았습니다.
[조선중앙TV/3월 16일 : "김정은 동지께서 사랑하는 자제분과 함께 준공 및 조업식장에 도착하시자..."]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동행했는데요.
이날 북한 매체들은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표현한 데 이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향도의 위대한 분들'이라고 칭했습니다.
[조선중앙TV/3월 16일 오전 9시 보도 : "향도의 위대한 분들께서 당과 정부, 군부의 간부들과 함께 강동종합온실을 돌아보셨습니다."]
'향도'는 길을 인도한다는 뜻으로, 북한에선 주로 최고 지도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인데요.
그만큼 김주애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그런데 첫 보도가 나간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조선중앙TV가 돌연 '향도'라는 표현을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 수정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조선중앙TV/3월 16일 오후 5시 보도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이어 당과 정부, 군부의 간부들과 함께 강동종합온실을 돌아보셨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유일 영도 체계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지만, 일각에선 김주애의 과도한 노출과 우상화에 따른 주민 반감을 우려했기 떄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 지난해 10월,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들은 김주애의 잦은 등장이 반갑지 않았다는데요.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소문으로) 공주요 뭐요 하면서 사람들이 처음에는 많이 놀랐어요. '와, 공주?' 이러면서 궁금해했어요. 처음에는 궁금해하다가 너무 나오니까 공주라기보단 '안 예쁘네'하는 거밖에 생각 안 나요."]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맨날 보는 게 그 화면, 그 장면. 매일 계속 그걸 봐야 하니까. 전 그냥 안 봐요. 북한에서도 안 봤어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김주애의 능력에 관한 독특한 소문도 돌았는데, 그런 소문과 연관된 행보를 주애가 이어가면서 반감은 더 커졌다고 합니다.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 : "우리가 나오기 전에도 '로켓 박사'에 좋은 말은 다 명칭으로 붙이더군요."]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아, 저건 좀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왜 미사일 발사장까지 데리고 나오지. 쟤가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가들은 김주애의 활동이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정치, 군사 분야에 집중된 것이 반발심을 샀을 거라고 분석합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북한 주민에게) 지금 김정은 정권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시장 활동을 허용해 주고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 그게 최고 바라는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세상,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지도자라면 김주애를 지지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또 첫 등장 당시 묶음 머리에 점퍼 차림으로 그 나이 또래의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후엔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을 성숙하게 연출해 되레 위화감을 조성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진무/전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김주애가 입은 옷이나 이런 것들이 나도 외부 세계처럼 잘 살 수 있는데 쟤는 왜 저렇게 잘 사는거야 라는 비교 심리로 김주애에 대한 비판적인, 불만적인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년 세대 탈북민 역시 김주애의 차림새에서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권민철/2023년 10월 탈북 : "북한에 청년들 단속이 엄청나게 세거든요. 옷차림, 머리 단장 다 북한식으로 해야 하고 머리는 규정대로 깎아야 하고 그런 게 있는데 김주애가 등장했는데 머리도 길게 하고 있고. 그건 중국식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했지, 옷차림도 학생이 사회인 옷차림처럼 하고 나오니까 열이 받죠. 저도 열이 받는데."]
북한 내부에서도 김주애에 관한 긍정적 메시지는 찾기 어려운 현실.
그런데도 왜 북한 당국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김주애를 끊임없이 노출시키며 후계자 논란까지 부추긴 걸까요?
[김진무/전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김정은의 건강에 대한 너무나 많은 주변 국가의 우려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결국은 북한 내부에서도 북한 정권의 취약성을 지적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자기한테 불리하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언제든지 후계자가 있다는 것을 지금 과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 자녀를 공개해 대외적으로는 세습 정권의 공고함을 과시하고 내부적으론 주민 결속을 도모했다는 건데요.
대외적 관심 끌기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내부 결집은 미약해 보입니다.
지금 북한 사회의 가장 큰 과제는 청년 세대들의 충성심 제고와 사상 단속이라는 분석입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우리는 김일성 시대는 몰라요. 김정일 시대도 기억이 잘 안 나고요. 생활총화(자기비판) 시간엔 다 꾸벅꾸벅 조는데요. 자요 그냥."]
[권민철/2023년 10월 탈북 : "저뿐 아니고 대부분 북한 청년들 자체가 옛날 사람들처럼 인식이 그렇지 않아요. 충성심 같은 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거 같아요."]
북한 당국은 이런 청년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각종 법안을 제정해 통제를 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지금의 북한 청년 세대를 전통적인 사상 교육이나 강제적 법안으로는 통제할 수 없을 거란 의견도 나옵니다.
이들을 일본의 '신인류'세대와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신인류라는 표현은 세대 차이를 넘어서 의식적인 차이가 너무 크게 나타났을 때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고 봐서 신인류라는 표현이 붙었었는데요.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일본 경제의 전성기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신인류'세대처럼 북한 청년들 역시 비교적 넉넉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했다는 겁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김정은 집권 초기 2012년부터 2019년 전까지의 북한은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글로벌을 지향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청소년, 유년기를 보냈다면 2019년 이후로 굉장히 경색된 이 상황은 굉장히 견디기 힘들어진 상황이 됐을 겁니다."]
이번 동해 탈북민 중 두 명의 청년들도 중장년 세대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졌고, 북한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정치적 견해도 또래 집단끼리는 나눈 적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맨날 김정은 원수님 김정은 원수님 노래를 부르라고 하고, 만세 하라고 하고. 왜 만세를 해야 하는데요. 제가."]
[권민철/2023년 10월 탈북 : "학생들의 경우에 공개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말하고. 그런 정치적 발언이 옛날 같으면 입 밖에 내놓을 수조차 없었거든요."]
또 한류를 비롯한 각종 외부 문화에 늘 노출돼 있는데도, 단속을 두려워하기는커녕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문자로) 남한말을 써서 단속당하면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돈을 얼마 가져와 해서 그걸 주면 (명단에서) 지워주고. 저는 대체로 돈을 주고 다 빠져나왔어요."]
애국심과 충성심을 강조하는 국가와,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청년들 간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건데요.
여기엔 2000년대 이후 발달한 시장과 외부 정보의 유입 등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한별/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 : "제가 북한 내부 영상을 한번 봤었는데 젊은 세대들이 줄을 맞춰서 학교로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저희 때 불렀던 노래를 랩처럼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외부 문화가 저들에게 들어가서 이런 영향을 끼친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달 17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평양 화성지구 살림집 준공식 행사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 공연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는 새 선전가요를 공개했는데요.
[북한 선전가요 '친근한 어버이' : "노래 하자 김정은 위대하신 영도자 자랑하자 김정은 친근한 어버이"]
무대 뒤편에서는 뮤직비디오도 상영됐는데 리춘히를 비롯해 북한 아나운서들이 엄지를 치켜드는가 하면, 고려항공 승무원과 공장 일꾼들도 등장합니다.
딸 주애의 모습도 빠지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기법의 선전 선동으로 보이는데 한류 이상의 호응을 얻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 당국의 갖가지 묘책에도 불구하고 청년 세대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며 사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아무리 단속해도 안 되는 게 우리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단속하고 있잖아요."]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 :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부모도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아이들의 정신적 세계관이 거기로 자꾸 빠져가는 건 막지 못해요."]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북한 청년층.
과연 이들의 변화된 삶의 방식이 북한 사회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김주애 띄우기’ 반감…변화의 주역 ‘청년층’ | K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