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사항
- 논문명 :「동아시아 反戰・反侵略 국제연대 구축의 선행사례로써 일제 침략기 한・중・일 아나키스트들의 연대활동」
"The Solidarity Activities of Anarchists from Korea, China and Japan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as a Precedence Case of Establishment of Anti-War and Anti-Aggressive International
Solidarity in the East Asia"
- 저자 : 한상도
- 수록지명 : 통일인문학 제61집
- 발행일 : 2015.03
- 페이지 : pp.547-584
□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한 · 중 · 일 아나키스트들의 연대활동
3. 연대활동을 가능케 한 공유가치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 키워드
동아시아, 아나키즘, 자유연합, 상호부조론, 적자생존론, 반강권, 반파시즘 국제연대
□ 초록
일제침략기 한 · 중 · 일 세 나라 아나키스트들의 연대는 20세기 초 일본 東京을 주 무대로 하여 한 · 중 유학생들과 당시 일본의 진보적 사상계의 대표적 인물인 幸德秋水 · 大杉榮 등과의 교류에서 비롯되었다.
적어도 1920년대 초반 까지는 도쿄가 세 나라 아나키스트간 연대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 1920년 중반 이후 일본사회의 파시즘화가 진전되는 사실을 배경으로, 일본인 아나키스트들도 활동무대를 중국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대륙은 한 · 중 · 일 세 나라 아나키스트들의 연대활동의 현장이 되었다.
세 나라 아나키스트들의 연대 형성에는 크로포트킨의 相互扶助論이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사회진화론의 適者生存論은 약자인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상호부조론에 기초한 사회혁명의 방향 제시는 이론적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또 아나키즘의 ‘反强權’ 논리가 種族主義의 틀을 넘어서 약소민족의 국제연대를 통해 반제국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호부조의 원리와 함께 한 · 중 아나키스트간의 교류와 연대를 가능케 한 동력으로 역할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日帝라는 존재가 ‘强權’의 구체적인 모습을 띠었기에, ‘反强權’의 구체적인 모습 역시 反日 · 反帝로 모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個人’이기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정체성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자유연합’의 의지를 매개로 삼아, 국제연대를 형성할 수 있게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제의 대륙침략과 이에 맞선 반파시즘체제로 대표되는 1930년대 국제정세에 대한 대응논리로서 아나키즘 논리의 외연이 확장된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즉 일제의 아시아 침략이 강화됨에 따라 ‘반강권 투쟁=항일투쟁’이라는 합의하에 민족주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先 항일 後 아나키즘사회 건설’ 논리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민족주의세력과의 연대도 가능해졌고, 국가의 존재감 역시 타도 대상이 아니라, 약소민족 해방과 반제 · 반파시즘의 구심점으로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아나키즘이 갖고 있는 사고의 유연성과 시의성을 알려준다고 하겠다. 아나키즘사회 건설이라는 목표 달성에 집착하여,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조응하는 데 실패한 실험이 되지 않기 위해, 반파시즘 국제연대라고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아나키즘의 가치 구현을 위해 진력했던 사실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한 · 중 · 일 세 나라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역사 · 영토를 둘러싼 긴장관계를 극복해야 하는 지금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 Abstract
The solidarity of anarchists from Korea, China and Japan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was originated in the communication between foreign students from Korea and China and Kotoku Shusui and Oski Sakae, who were representative figures of the world of progressive thought, with the Tokyo as their stage.
Until the early 1920s at least, Tokyo was the center of solidarity of anarchists from three countries, but after the mid of 1920 as the fascism in Japanese society became stronger, the Japanese anarchists shifted their stage of action to China. With this, China became the field of solidarity activities of anarchists from three countries.
The Kropotrin’s Mutual Aid played the role of connecting link to form solidarity of anarchists from three countries. The law of survival of the fittest of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made intellectuals in East Asia have sense of crisis. But the direction guidance of social revolution based on the Mutual Aid made a breakthrough to escape the theoretical trouble.
In a regard that the theory of ‘anti-strong power’ of anarchists claimed the anti-imperialism beyond the frame of tribalism through international solidarity of the people of a small and weak power, it was also a motivity to make the communication between anarchists and the solidarity into possible with the principle of Mutual Aid. As the Japanese Imperialism was the one of the strong powers, the definite form of ‘anti-strong power’ became concentrated into anti-Japan and anti-imperialism.
With this, the identity of anarchists who rejected to become a ‘individual’ as a member of country and nation made international solidarity into possible through the medium of ‘liberal union’ beyond the frame of country and nation.
Also, we should note that the extension of anarchistic theory as a response theory against the international situation of 1930 characterized by invasion of continent of Japan and anti-fascism was spread out. As invasion of Japan to Asia was strengthened, the theory of anarchism was concluded in theory of ‘first anti-Japan, later the establishment of anarchistic society’ through solidarity with nationalists under the arrangement of ‘struggle against the strong power = struggle against the Japan’. So, the solidarity with nationalists was possible, and the existence of country could be interpreted as a center of liberation of the people of a small and weak power and anti-Imperialism and anti-fascism than target to be overthrown.
From this, we could find out the thinking flexibility and timeliness of anarchism. The implied meaning of effort of anarchists to realize the value of anarchism to be not a failed experiment to correspond the change of situation and environment sticking the target of establishment of anarchistic society is still effective to overcome the strained relations between Korea, China and Japan over the history and terri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