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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근본적인 기획은 통일을 단순한 체제 간 이질성의 극복 문제로만 사고하는 기존의 통일담론을 넘어서 있다. 통일독일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통일은 정치·경제 이전에 보다 더 근본적인 정서·문화의 통일을 필요로 한다. 정서·문화의 통일은 정치·경제의 통합을 떠받치는 바탕이자 통일을 진정한 사회적 통합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다. 통일인문학이 출발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통일은 진정한 사회적 통합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치·정서·생활상의 통합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이런 노력 없이 통일이 갑자기 이루어진다면 통일 이후 독일처럼 우리는 양 지역 사이의 이질성과 배타성, 통합 과정에서의 상처로 인해 극심한 갈등과 사회통합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강만길, 백낙청, 송두율은 ‘분단시대’, ‘분단체제’, ‘경계인’을 내세우면서 민족적 감성에 호소하는 낭만적 통일론과 정치-경제적인 체제통합론을 넘어서 인문학적인 통일담론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들 통일담론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 전체에 아로새겨진 분단의 흔적들을 탐구하지는 못했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 자신에 대한 학문, 곧 지인(知人)의 학이며 사람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통일의 인문학적 패러다임은 분단체제의 극복 또는 통일과 관련하여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인문학적 통일담론은 분단체제가 사람들의 몸에 남긴 흔적과 상처들, 그리고 분단체제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심어 놓은 가치, 정서, 생활양식들에 대한 탐구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인문학적 통일담론들이 발전시킨 인문학적 요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주로 통일에 대한 관점 및 가치-이념들이었으며 분단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기친 영향들에 대한 분석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인문학적 통일담론과 달리 통일인문학은 분단체제와 사람들의 정서-가치-문화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학으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




통일이 사회통합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인 체제 통합뿐만 아니라 가치·정서·생활상의 공통성을 창출하는 작업, 즉 ‘머리-사상이념/가슴-정서문예/팔다리-생활문화’의 통합을 필요로 한다.

① 소통-상생의 패러다임은 동질성 대 이질성을 ‘차이와 공통성’의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데 기초한다. 남과 북의 적대성은 바로 이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것으로서 ‘타자의 타자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소통에 근거한 상생의 패러다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타자의 타자성’을 ‘가르치고 배우는’ 비대칭적 소통의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개념은 남과 북이 타자의 타자성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언어규칙의 정립, 즉 새로운 통일한반도의 가치와 규범을 마주침이 만들어내는 공감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치유의 패러다임은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낸 대립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패러다임이다. 분단체제는 단일 민족국가를 향한 민족적 리비도가 좌절되는 트라우마를 ‘분단국가’의 결핍을 감추는 국가주의로 전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분단체제가 유발하는 병리적 현상들을 ‘병’으로 간주하고 마음의 수양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단체제의 역사가 빗어낸 비극을 상호 자신의 역사로 통합하면서 분단을 극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통일은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한민족의 분단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트라우마들을 분석하고 이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상호 분단된 서사를 하나의 통합적 서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③ 통합의 패러다임은 분단체제가 만들어내는 분단된 국가의 사회적 신체들을 통일의 사회적 신체로, 분단의 아비투스를 연대와 우애의 아비투스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남과 북의 적대적 공생구조는 지배메커니즘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분단국가의 국민들을 만들어내는, 분단된 국가의 사회적 신체들, 즉 신체에 내면화된 ‘성향, 믿음들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작동한다. 따라서 남/북 분단의 적대성과 공생성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단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면서 상호 분단체제 속에서 내면화한 아비투스가 가진 오인의 구조를 승인하고 그 속에서 분단의 아비투스를 극복하는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통일인문학’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통일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통일 패러다임을 정립함으로써 통일의 인문적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한국 인문학의 주체성 확립과 세계화를 실현하는 데 있다. 따라서 통일인문학은 기존의 인문학이 분과적 틀과 정전화를 벗어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문학의 초월론적 구조는 이념, 가치에 대한 고수 및 전통의 찬양을 낳으며 실증적인 자연과학과 대립해 왔다. 이 속에서 인문학은 고전을 정전화하고 문명과 야만을 대립시켰다. 이런 점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반감과 68혁명 이후 서구에서 진행된 반인문주의를 조망하면서 이런 운동들이 왜 인문학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발전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반성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단극복과 통일이라는 우리 민족의 시대사적 요청뿐만 아니라 인문학 자신의 본래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세속성과 실천성을 인문학의 고유한 기능인 비판성과 실천성, 자기성찰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통일인문학은 분단극복과 통일이라는 ‘세속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의제를 인문학 내부로 가져옴으로써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통일인문학은 이런 세 가지 패러다임의 구축을 통한 분단극복과 통일한국의 건설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인문학은 한국의 인문학을 세계화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인문학은, 비록 최근 주체적인 모색이 있기는 하지만 기간 지적․학문적 식민주의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으로 ‘과잉보편화’된 서구적 보편주의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과잉특수화’된 한국적․동양적 특수성을 고집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이 옥시덴탈리즘으로 전화하면서 양자의 대립, 동양과 서양의 대립을 낳고 있다. 그러나 통일인문학은 서구적 보편의 특수화와 ‘우리 안의 보편성’을 재발견할 수 있는 학문이다.

첫째, 통일인문학은 이런 패러다임의 구축 작업 그 자체가 바로 온전한 한국학을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한국/조선학은 여전히 남 또는 북이 배제된 반쪽짜리 국학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통일인문학의 모색은 남북한을 온전하게 아우르는 온전한 한국학을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통일은 남과 북으로 분열된 한국학과 조선학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 치하에서 고국을 떠나야 했던 재외동포들이 그들의 삶에서 변용시킨 다양한 가치들과 문화들의 자산을 통합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셋째, 이런 온전한 한국학의 정립을 통해서 근대화가 낳은 ‘위험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보편성을 찾아갈 수 있다.

통일인문학은 분단 경험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인문학적 과정을 통해서 통일의 과제를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전면화되고 있는 노마드 시대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인종적․성적 갈등과 분열,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통합의 보편적 가치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